그래픽 디자인 교육

안녕하세요. 민구홍입니다.

슬기와 민이 디자인한 초록색 표지가 상쾌한 월간 『디자인』 2023년 3월호에서는 ‘그래픽 디자인 교육’을 다뤘습니다. 저는 (지금은 퇴사한) 박슬기 기자님과 (선생인 동시에 학생으로서) 제가 경험한 그래픽 디자인 교육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대화 내내 프랑스의 철학자 자크 랑시에르(Jacques Rancière)의 문장이 떠올랐고요.

진정으로 배우고자 하는 사람은 자신이 품은 욕망이 만드는 긴장과 자신이 마주한 상황이 만드는 강제성 덕에 옆에서 설명해주는 스승 없이 혼자 배울 수 있다. —자크 랑시에르, 『무지한 스승』(Le Maître ignorant)


‘그래픽 디자인 교육’ 특집인 만큼 민구홍 님이 수학한 미국 시적 연산 학교(School for Poetic Computataion, SFPC)에 관해 묻고 싶습니다. 시적 연산 학교에 가기로 결심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학교에 기대한 바는 무엇이었는지, 민구홍 님은 어떤 학생이었는지, 나아가 기대와 현실에 차이가 있었는지 알려주세요.

안그라픽스에서 일한 지 5년째 되던 해였어요. 대학교를 졸업하기 전부터 우연히 홍익대학교 안상수 선생님 연구실(일명 ‘날개집’)에서 연구원으로 일하고, 자연스럽게 안그라픽스에 취업한 뒤 사실 쉬어본 적이 없었죠. 휴식이 필요했던 것 같아요. 일하는 게 지루해지기도 했고요. 이런 와중에 우연히 미국 시적 연산 학교에서 여름 학기 학생을 모집한다는 소식을 접했죠. 관심이 생긴 건 순전히 학교 이름 때문이었어요. 서로 어울리지 않을 법한 어휘인 ‘시적’과 ‘연산’이 어우러진 점이 근사했죠. 학교 이름이 대학교에서 문학(시)을 공부하고, 꼬마 때부터 컴퓨터를 좋아한 제 모습과 얼마간 포개지기도 했고요. 학교 웹사이트를 둘러보며 조금 이상한 학교라 생각했어요.

“우리의 모토는 다음과 같습니다. 더 많은 시, 더 적은 데모.”

갸우뚱한 동시에 호기심이 생겼죠. 평소에 좋아하던 미국의 시인이자 우부웹(UbuWeb)의 운영자인 케네스 골드스미스(Kenneth Goldsmith)가 출강했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고요. 그를 만나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정작 가보니 제 생각보다 훨씬 이상했어요. 시적 연산 학교는 2013년 미국 뉴욕에 설립된 대안 예술 학교입니다. 소수의 학생과 교수진이 긴밀히 협력해 예술을 중심으로 코드, 디자인, 하드웨어, 이론이 교차하는 지점을 탐구하죠. 모든 것을 처음부터 하나하나 알려주는 ‘친절한’ 학교는 아니었어요.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유도하며, 일주일 내내 아침부터 저녁까지 수업이 이어졌죠. 일반 대학교와 견주면 2년 정도에 해당하는 과정일 거예요. 케네스 골드스미스는 만나지 못했습니다. 2023년 현재 시적 연산 학교의 수업은 온라인으로 운영됩니다.

워크룸은 민구홍 님에게 첫 번째 직장이었나요? 그곳에 다니기 전부터 워크룸의 존재를 인지하고 있었나요? 출판사이자 디자인 스튜디오인 그곳에서 일을 시작한 것이 지금 ‘민구홍 매뉴팩처링’을 운영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나요? 워크룸에서 가장 크게 배운 것이 있다면 무엇이었나요?

시적 연산 학교에 합격한 무렵 워크룸의 박활성 선배에게 연락을 받았어요. “같이 일합시다.” 박활성 선배를 비롯해 김형진, 이경수 선배는 안그라픽스에서 ‘16시’를 기획하면서 처음 만났어요. 그 뒤로 좋아하고, 또 존경하는 선배였고, 당연히 그들과 일하는 모습을 상상하기도 했죠. 그렇게 학교를 마치고 귀국한 뒤 자연스럽게 워크룸에 입사하게 됐습니다. 사실 워크룸의 제안이 없었다면 저는 지금도 미국에 있었을 거예요. 동기들처럼 작가로 활동하거나 학교에 출강하면서요. 워크룸에서 제 역할은 편집자였지만, 가장 먼저 한 일은 밥 길(Bob Gill)의 『이제껏 배운 그래픽 디자인 규칙은 다 잊어라. 이 책에 실린 것까지.』(Forget all the rules about graphic design. Including the ones in this book.)를 한국어로 번역하고, 워크룸 웹사이트를 개편한 일이었어요. 워크룸이 구성원의 역할을 엄격하게 규정하지 않은 덕에 가능한 일이었죠. 그 뒤 ‘실용 총서’ 등 여러 책을 기획하고, 미술 및 디자인계 안팎의 크고 작은 웹사이트를 만들며 사람을 대하고 일하는 방법을 배웠죠. 이 과정에서 민구홍 매뉴팩처링을 널리 소개할 수 있게 됐고요. 워크룸 덕에 30대 초중반을 정말이지 행복하게 보냈습니다.

이후 안그라픽스로 자리를 옮기고, ‘정체불명의 독립 사업부’를 운영하게 된 까닭은?

워크룸에서 일한 지 5년째 되던 해였어요. 안그라픽스의 안마노 님에게 연락을 받았죠. “같이 일합시다.” 안마노 님은 안그라픽스의 다음 단계를 준비하던 참이었고, 저를 디자인계로 이끌어준 안그라픽스에 힘을 보탤 기회가 생기면 좋겠다고 생각해왔었어요. 그렇게 ‘디렉터’라는 직함과 함께 ‘안그라픽스 랩’(약칭 및 통칭 ‘AG 랩’)이라는 정체불명의 독립 사업부를 맡게 됐죠. 사실 자리를 옮기기로 마음먹은 까닭은 사실 사소합니다. 사무실이 저희 집과 정말 가까웠거든요. 연남동 공원(경의선숲길) 옆에 있는데, 도보로 2분 거리입니다. 이제 운영한 지 1년 정도 됐는데, AG 랩은 안그라픽스라는 소프트웨어를 판올림하는 데 필요한 애드온 또는 플러그인 같은 게 아닐까 싶어요. 빨리 역할을 다하고 사라지는 게 맞을지도 모르겠어요.

‘민구홍 매뉴팩처링’이라 이름을 지은 이유도 궁금합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을 설립한 게 2015년이었어요. 캐나다 출신 영국의 미술가 J. R. 카펜터(J. R. Carpenter)‘핸드메이드 웹’(Handmade Web)을 주창한 해이기도 하죠. 디자인계에서 ‘소규모’라는 접두어가 붙은 스튜디오들이 등장하던 시절이었고, 저도 덩달아 뭔가 해보고 싶었어요. 다만, 많은 스튜디오가 소규모를 지향하는 만큼 반대로 큰 회사처럼 보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제 이름을 내세우는 건 어딘가 부끄럽고 겸연쩍은 일이었고, 동시에 이름에 지나치게 공을 들인 것처럼 보이고 싶지 않았죠. 고민 끝에 제 이름 뒤에 ‘매뉴팩처링’을 붙이니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저와 거리가 적당히 생기고, 무엇보다 그럴듯한 회사처럼 보였거든요. ‘매뉴팩처링’(manufacturing)은 본디 ‘원재료를 인력이나 기계력 등으로 가공해 대량으로 생산하는 일’을 뜻합니다. 야구에서는 ‘도루, 진루타, 희생타 등 안타가 아닌 방법으로, 어떤 식으로든 득점하는 기술’을 뜻하기도 하죠. ‘매뉴팩처링’이 품은 두 가지 뜻이 회사와 어울린다고 생각했습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이 정확히 무엇을 하는 회사인지 세 줄 내로 정의할 수 있을까요? 회사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된 사람에게는 어떻게 소개하는지도 궁금합니다.

공식 웹사이트를 비롯해 여러 방식으로 회사를 소개하기 때문일까요? 사실 민구홍 매뉴팩처링을 소개할 일은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이미 어느 정도 짐작하신 상태에서 이야기가 시작되곤 합니다. 회사를 소개하는 방식은 소개하는 대상마다 달라지는 것 같아요. 며칠 전 한국 코카-콜라와 미팅할 때는 코카-콜라를 사랑하는 회사로 소개했어요.

민구홍 매뉴팩처링 공식 웹사이트의 ‘회사 소개’ 페이지에서는 한번 읽고서는 정확히 뜻을 헤아리기 어려운 없는 문장이 반복됩니다.

시작은 시청각의 열세 번째 ‘시청각 문서’로 발표한 「회사 소개」였습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A.P.C. 토트백을 분해해 홍보용 수건으로 활용하지 않습니다.”를 시작으로 회사에서 하지 않는 일 서른일곱 가지를 소개했죠. 지금도 그렇지만, 회사를 설립한 당시 무슨 일을 하는 게 좋을지 몰랐거든요. 따라서 하지 않는 일을 소개하는 게 당연했죠. 나아가 모름지기 회사라면 하는 일보다 하지 않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누군가 민구홍 님을 ‘웹 디자이너’로 부른다면 정당한 표현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만약 ‘웹 디자이너’라는 단어와 불일치를 느낀다면 무엇 때문인가요?

2022년 『더 플로어플랜』(The Floorplan)을 운영하는 변현주 선생님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저를 무엇으로 규정하는지는 그저 상대방에게 맡기고 싶습니다. 제가 생각지 못한 직함이 튀어나오고, 그에 따라 상대방을 대하는 제 태도도 달라지는 게 재미있고요. 그렇게 저는 상대방에 따라 편집자뿐 아니라 작가, 선생님, 나아가 남편이나 애인이 되기도 하겠죠.”

여러 직함으로 불리곤 하지만, 저는 무엇보다 ‘편집자’에서 풍기는 무미건조함이 마음에 듭니다. 이는 ‘편집’이라는 행위가 아우르는 범위가 불분명하다는 점에서 비롯합니다. 아주 넓기도 하고, 아주 좁기도 하죠. 저는 디자인 또한 편집의 일부라고 생각해요.

「새로운 질서」에서 수업을 진행하기도 합니다. 많은 디자이너가 찾고 있고, ‘새로운 질서 그 후…’ 같은 졸업생들 또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질서」가 단순히 웹 언어 기술을 숙지하는 것 이상의 가르침을 전달한다면 그것은 무엇인가요?

「새로운 질서」가 ‘현대인을 위한 교양 강좌’를 표방하는 만큼 오히려 디자이너가 아닌 분들의 비율이 더 높아요. 학생, 회사원, 미술가, 음악가… 한번은 스님도 오셨죠. 「새로운 질서」가 웹 디자인을 가르치는 강좌였다면 지금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을 거예요. 「새로운 질서」에서는 웹사이트를 만드는 가장 쉬운 방법에 초점을 맞춥니다. 오늘날 등장한 첨단 기술과 견주면 분명히 시대착오적일지 모릅니다. 새로운 가지가 돋아나죠. 한편, 「새로운 질서」에서는 컴퓨터 언어를 다루는 일, 즉 코딩(coding)을 ‘실용적인 동시에 개념적인 글쓰기’로 바라봅니다. 그래픽 디자인 프로그램에 자리한 툴바와 아이콘 대신 그저 커서가 깜박이는 텍스트 에디터상에서 이뤄지는 코딩이 글쓰기와 전혀 다르지 않은 까닭이죠. 웹사이트를 만드는 건 낯선 언어를 익혀 시나 소설을 쓰는 일과 비슷하죠. 「새로운 질서」의 의도는 웹사이트를 만드는 기술을 익히는 것보다 이를 통해 자신을 향한 사랑을 확장하는 데 있습니다. 자신을 도저하게 사랑할 수 있다면, 남 또한 도저하게 사랑할 수 있지 않을까요? 여기서 웹사이트는 어쩌면 맥거핀에 불과할지 몰라요.

「새로운 질서」에서 ‘선생님’으로 불리기를 꺼린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파주타이포그라피배곳(2018년~)이나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시각디자인과(2022~23년)와 어깨동무하기도 하는 만큼 「새로운 질서」는 누군가에게 또 다른 학교처럼 보일지 모릅니다. 물론 어느 정도 정해진 커리큘럼이 있고, 제가 뭔가 알려드리는 자리지만, 그 과정에서 저 또한 참여자(일명 ‘새로운 질서의 친구들’)에게 배우는 바가 적지 않거든요. 학교임에도 선생과 학생의 구분이 흐릿한 학교인 셈이죠. 그래서 ‘선생님’이나 ‘교수님’ 같은 직함을 빼고 서로를 그저 이름으로 부릅니다. ‘님’까지 빼고 “슬기, 안녕하세요? 어떻게 지내셨어요?”처럼요. 누군가와 관계를 시작할 때는 호칭을 정하는 일이 중요하죠. 특정한 호칭을 부르는 순간 특정한 관계에 놓입니다. 일종의 위계가 만들어지죠. 이런 위계는 효율적으로 의사소통하는 데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특히 「새로운 질서」에서는요.

민구홍 님이 속한 웹의 세계에서는 그래픽 디자인 전공이 아니어도 충분히 디자이너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또는 본인의 경우가 특수한 걸까요?

저는 디자인을 전공하지는 않았지만, 운 좋게 주위에 솜씨 좋은 선생님, 선배, 동료가 있었고, 그들 바로 옆에서 그들이 어떻게 일하는지 지켜보며 디자인을, 정확히는 ‘디자인’이라는 기술을 익힐 수 있었어요. 특히 그들이 디자인하며 결정을 내릴 때 그 이유를 따져보는 게 도움이 됐죠. 제가 디자인을 익힌 또 다른 학교인 구글(Google)의 도움도 많이 받았고요. 요즘에는 챗GTP(ChatGTP)의 도움까지 받죠. 디자이너로서 저는 일반적이거나 모범적인 사례는 아니에요. 일종의 우화(寓話)로 보는 게 맞겠죠. 디자이너가 되겠다는 목표 없이 우연히 또는 느닷없이 디자인계에 발을 들여놓게 된 만큼 당연히 따라야 할 모범이나 따르고픈 모범 같은 것도 없었고요. 무엇보다 모범을 따른다고 반드시 그렇게 되리라는 보장도 없죠. 모범이 있다면, 그를 참고해 자신에 맞게 편집하는 게 중요하겠죠. 지금 제 모습은 그저 제가 발 디딘 자리에서 최고의 선(善), 즉 하루 24시간 가운데 여덟 시간을 행복하게 보내는 상태를 더듬어본 결과 또는 과정입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을 운영하며 디자인 전공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어려웠던 점이 있었다면 알려주세요.

없었던 것 같아요. 혹시 있었더라도 저를 고통스럽게 한 점은 금방 잊는 편입니다.


참고로 지면에는 위 대화를 요약한 글이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