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일합시다.”

안녕하세요. 민구홍입니다.

같이 일합시다

박활성 선배의 제안으로, 워크룸의 열네 번째 구성원으로서 햇수로 6년여 동안 함께한 이메일 주소 14@wkrm.kr을 오는 2022년 1월 31일까지 사용합니다. 한편으로는 크고, 한편으로는 사소한 이 결정에는 『와이어드』(Wired)의 초대 편집장 케빈 켈리(Kevin Kelly)가 강조하는 말이 얼마간 힘이 됐습니다.

두 번 재고, 한 번에 자릅니다.

단순히 ‘직장’이라 부르고 싶지 않을 만큼 워크룸은 제게 그 자체로 너무나 각별하고 소중하기에 함부로 ‘떠난다’고 표현하기 어렵습니다. 문장을 완성하는 순간 실제로 그렇게 될 것 같아서요. 남은 한 달 동안 제가 관여해온 일을 정리하는 한편, 완벽한 표현을 찾을 때까지 김형진 선배의 진심을 담은 우스갯소리 “어색함 없이 서로 착취하는 관계”를 어떤 방식으로든 이어나가고 싶습니다.

2022년 2월 22일, 제가 좋아하는 숫자인 2가 무려 여섯 개나 포함된 날, 소속을 안그라픽스(Ahn Graphics, AG)의 정체불명 독립 사업부 ‘안그라픽스 랩’(약칭 및 통칭 ‘AG 랩’)으로 옮깁니다. (참고로 말씀드리면, 제가 근근이 운영해온 기생 회사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숙주 또한 달라지며, ‘현대인을 위한 교양 강좌’를 표방하는 새로운 질서는 여전히 스튜디오 파이, 취미가에서 진행합니다.) 구성원은 아직 저뿐이고, 면구스럽게도 직함은 ‘디렉터’입니다만, 아무래도 좋으니 평소처럼 편하게 불러주세요.

AG 랩은 안그라픽스의 새싹 또는 홀씨 또는 곁가지입니다. AG 랩에서는 (1) 안그라픽스가 35년여 동안 한국 디자인계에서 쌓아온 유산을 재료 삼아 안그라픽스 안팎, 즉 구성원과 잠재 고객에게 영감과 용기를 선사하는 크고 작은 일을 기획하고 수행하는 한편, (2) 이를 통해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콘텐츠를 생산하고 다루는 여러 방식을 모색하는 한편, (3)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기존 활동을 지원하며 일하기의 또 다른 모델을 실험하는 한편, (4) 민구홍 매뉴팩처링을 통해 미술 및 디자인계 안팎에서 작동하는 하이퍼링크를 자처하는 한편, (5) 그 성공과 실패를 파주타이포그라피배곳, 한국타이포그라피학회, 새로운 질서 등 기존 교육 시스템 안팎에서 나누려 합니다. AG 랩의 행동강령은 다음과 같습니다.

“작고, 단순하고, 느닷없고, 끊임없이!”

다소 거창해 보이지만, 제가 지금껏 해온 일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계획에 없던 깜짝 에피소드 하나가 추가됐을 뿐입니다. 또는 제게 좋은 친구가 생겼다고 여기면 어떨까요?

당장 AG 랩에는 완성된 공간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일단 저와 제 오랜 비즈니스 파트너 로럴 슐스트(Laurel Schwulst), 랩톱 한 대만으로 뉴욕에서 약 2주 동안 파이어플라이 생추어리(Firefly Sanctuary), 프린스턴 대학교, 링크트 바이 에어(Linked by Air)를 오가며 비공식적인 업무를 시작하고, 이후 서울에서도 물리적인 하이퍼링크를 마련할 때까지 책상과 의자를 임대하는 방식으로 가볍게 움직일 예정입니다. 혹시 AG 랩(덩달아 민구홍 매뉴팩처링까지)이 의탁할 만한 자리가 있다면 편히 알려주세요.

사실을 마음껏 미화할 수 있는 이런 기회가 아니면 글로는 진솔한 제 마음을 드러내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6년여 동안 저를 움직인 동력의 한 부분은 그저 제가 몸담은 곳이 조금 더 근사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습니다. 그 소중한 마음을 이끌어내주신 선배이자 동료, 때로는 친구이자 선생님인 워크룸 구성원분들을 비롯해 함께 추억을 쌓은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한 분씩 인사드리고 싶지만, 면밀히 계산해보니 1년이 조금 모자랄 것 같습니다.) 워크룸 덕에 30대 초중반을 행복하고 아름답게 보냈습니다. 워크룸에서 듣고 익힌 바를 요긴하게 인용하고 실천할 수 있도록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기를 바라며, 모쪼록 2022년에도 워크룸을 비롯해 AG 랩, 나아가 민구홍 매뉴팩처링에도 많은 관심과 사랑 부탁드립니다.

민구홍 드림

편집자(디자이너, 프로그래머), 워크룸
14@wkrm.kr

디렉터, AG 랩
minguhong@ag.co.kr
lab@ag.co.kr

운영자, 민구홍 매뉴팩처링
support@minguhongmfg.com


이 편지는 2021년 12월 무렵 이제껏 워크룸에서 만난 친구, 동료, 선배 들에게 느닷없이 전송됐습니다. 다음과 같은 웹사이트로도 만들어졌고요.

한편, 웹사이트의 URL(Uniform Resource Locator), 즉 주소는 다름 아닌 ‘https://minguhong.fyi/asdf’입니다. 여기서 ‘asdf’는 전통적으로 무신경함을 드러내는 네 글자죠. 거의 처음 공개적으로 진솔한 마음을 드러내본 저 자신이 조금 쑥스러운 탓에 이를 조금이나마 눅여보려는 시도였습니다. 하지만 이 편지를 쓸 때 품은 마음만큼은 늘 기억하려 합니다. “구홍 씨, 무슨 색 좋아해요?” 워크룸과 함께하기 전 박활성 선배의 질문에 대한 답변의 결과물인 초록색 헬메르(Helmer)와 함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