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

안녕하세요. 민구홍입니다.

AG 랩의 오늘과 내일을 구상할 무렵 저는 가장 먼저 AG 랩에 물리적인 공간, 즉 사무실이 과연 필수적인지 자문했습니다. 10여 년 동안 여러 모자를 바꿔 쓰며 일해본 결과 제게는 결국 책상과 의자, 그리고 인터넷에 연결된 랩톱 한 대면 충분했거든요. 게다가 AG 랩을 처음 소개하는 편지에 이렇게 밝히기도 했고요.

당장 AG 랩에는 완성된 공간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일단 저와 제 오랜 비즈니스 파트너 로럴 슐스트(Laurel Schwulst), 랩톱 한 대만으로 뉴욕에서 약 2주 동안 파이어플라이 생추어리(Firefly Sanctuary), 프린스턴 대학교, 링크트 바이 에어(Linked by Air)를 오가며 비공식적인 업무를 시작하고, 이후 서울에서도 물리적인 하이퍼링크를 마련할 때까지 책상과 의자를 임대하는 방식으로 가볍게 움직일 예정입니다. 혹시 AG 랩(덩달아 민구홍 매뉴팩처링까지)이 의탁할 만한 자리가 있다면 편히 알려주세요.

한 회사의 독립 부서로서 다소 급진적일지 모르겠지만, 저는 장소가 어디든 제가 일하는 자리가 곧 AG 랩의 사무실인 모습을 상상했습니다. 인터넷에 연결돼 있다면 어디서든 접근할 수 있는 웹처럼 말이죠. 불청객처럼 느닷없이 우리 곁을 찾아온 전염병 덕에 ‘원격 근무’라는 또 다른 업무 형태가 일반화하기도 했고요. “글을 쓰는 사람만이 쓸 수 있다.”라는 말처럼 일에서 중요한 건 결국 일이고, 우리가 일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건 그리 많지 않습니다. 당장 시급한 게 사무실이 아닌 것만큼은 분명하죠. 하지만 세상일이라는 게 어디 마음대로 되나요? 말 그대로 이런저런 이유로 AG 랩에 (저 혼자 사용하기에는 너무 큰) 10평 남짓한 사무실이 생기고 말았습니다. 주소는 다음과 같습니다.

서울시 마포구 동교로 215-1, 305호

사무실 출입문 안쪽에는 이런 안내문이 붙었고요.

사무실이 생긴 만큼 제게도 해야 할 일이 늘었습니다. 특히 사무실을 떠나기 전에 확인해야 할 사항이 몇 가지 있죠. 전등을 비롯해 냉방기나 난방기는 전원을 제대로 껐는지는 물론이고, 무엇보다 사무실에서 일하는 동안 스산해진 마음을 잘 다스렸는지까지요. 게다가 사무실이 생겼다는 사실은 언젠가 사무실이 사라질 수도 있음을 담보한다는 점 또한 염두에 두려 합니다. 그리고 사라짐의 대상이 제가 아니라 그저 사무실이라는 점 또한 믿으면서요.